필자가 고려의 의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무렵,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산악 문화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느라 산천제를 공부하면서부터였다. 그때 역사서에 서술된 제의, 의식, 의례 등의 개념을 살폈는데 특히 종교의례, 정치의례를 다룬 저술들이 흥미를 끌었다. 그 가운데 Howard J. Wechsler의 비단같고 주옥같은 정치를 읽고는 고려의 의례와 권력을 주제로 한 연구를 설계하게 되었다. 하지만 필자의 연구는 몇 해 동안 산천제와 제장을 탐구하는 데 그쳤다. 그러다가 2014년에 와서 새로운 연구를 계획하여 “왕실의례를 통해 본 고려의 정치 문화사”라는 주제로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을 받았다. 이때부터 필자는 왕실의 주요 의례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구체적인 작업으로 고려의 왕들이 주재한 주요 의식, 행사, 제사를 분석하여 의례와 권력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였다. 그것은 정치적 의례와 상징적 행위를 분석하여 고려 왕실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치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과 의미를 구체화하려는 목적 아래 이루어졌다.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에는 고려 왕실의 의례에 관한 연구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가 연구를 시작한 후로 즉위의례, 국상의례 등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2017년에는 일본에서 豊島悠果의 高麗王朝の儀礼と中国이라는 저서가 출간되었다. 그런 이유로 해마다 보고서를 쓰면서 연구사를 고쳐 써야 하였다. 고려 왕실의 세부 의례, 의식을 주제로 삼은 연구가 점차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반갑게 생각한다. 최근 조선의 왕실의례와 문화를 주제로 삼은 총서 수십 권이 선을 보였다. 머지않아 고려의 왕실의례에 관해서도 이러한 저술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책에서는 고려의 즉위, 환구, 태묘, 책봉, 연향, 순행 등에 관한 의례를 다루었다. 대표적인 국가제사와 국왕을 중심으로 왕실이 주인공인 주요 의례에 관하여 검토하였다. 그 성과를 한 권의 책으로 엮으려 하니 처음 제기한 문제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기초적 검토에 그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런 아쉬움과 부족함을 무릅쓰고 이제까지의 연구를 정리하여 내놓는 것은 의례에 관한 본격적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이다. 필자는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관해 덧붙임으로써 미흡한 점을 장차 보충할 것을 기약한다. 이 책에서 다룬 한두 주제에 관해서는 심층적인 연구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연구의 기반을 좀 더 튼튼히 하고 고려의 의례를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뜻에서이다. 아울러 고려사 예지 가례 편에 대한 역주 작업을 할 것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서론
1. 연구의 목적과 필요성 2. 기존의 연구 3. 자료와 연구 방법
제1장 왕위계승과 즉위의례
1. 고려 초 왕위계승과 의례 2. 사위의 보편화와 의례의 정비 3. 즉위의례의 구성과 상징 4. 무신집권기 의례의 변화 5. 즉위의례와 왕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