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의 노래 근대 대중가요 작사가론
장유정 저
22,000원
22,000원
판매중
경인문화사
양장
152*224mm(A5신)
294쪽
2018년 5월 25일
9788949947464
책 소개
왜 근대 대중가요 작사가론인가?

“사물을 가장 잘 아는 법이 방법적 사랑이고 사랑의 가장 잘 된 표현이 노래이고 그 노래가 신나게 흘러 다닐 수 있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라면, 그렇다면 형은 어떤 사랑을 숨겨 지니고 있습니까?”
-정현종의 <사랑 사설 하나 -자기 자신에게>-

근대 대중가요 작사가론을 기획하고 작사가 한명 한명에 대한 논문을 쓰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대중가요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면서 대중가요 작사가들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2004년에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일제강점기 대중가요 연구-유성기 음반 자료를 중심으로 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부터 본격적으로 작사가론을 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쓴 근대 대중가요 작사가론은 2005년에 발표한 안서 김억에 대한 것이었다. 안서 김억이 쓴 대중가요 가사를 모아서 소개하고, 그때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던 ‘김포몽’이 안서 김억의 예명이란 것을 처음으로 밝힌 논문이었다. 그렇게 안서 김억에 대한 논문을 시작으로 해서 약 10년 동안 8명의 작사가론을 완성했다. 이 책은 그 연구의 결과물을 모은 것이다.
사실, 대중가요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음악과 문학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므로 가사만으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애초부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사가와 그들이 쓴 가사에 주목한 것은 다음의 이유에서이다.
첫째, 노랫말에 작사가의 자의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중가요는 애초부터 근대의 산물이다. 여기서 ‘근대의 산물’이라는 것은, 대중가요라는 것이 ‘작사가와 작곡자가 근대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유통시킬 목적으로 창작하여 가수에게 부르게 한 노래’라는 것을 뜻한다. 그 전까지 민요나 잡가 등의 경우에는 작사자와 작곡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것이 대중가요가 등장하면서 작사자와 작곡자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냈고 심지어 중요한 구실까지 했다. 단적인 예로, 이하윤은 시인이자 대중가요 작사가이면서 콜럼비아 음반회사의 문예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중가요와 밀접한 관계를 지녔던 이하윤의 작품에는 이하윤만의 독특한 미감이 드러나기도 한다. 비록 대중가요가 기본적으로 이윤을 내겠다는 상업적인 목적에 따라 만든 것일지라도 특정 작사가가 만든 노랫말에서 그들의 자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
둘째, 근대 대중가요 작사가 중에 문인 출신이 많기 때문이다. 초창기 대중가요는 오늘날과 달리 전문 직업 작사가가 거의 없었다. 그에 따라 기존의 극작가나 시인들이 대중가요 작사에 참여하는 일이 많았다. 문인 출신의 작사가가 많다는 것이 그들 작품의 문학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문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어휘 선택이나 조어 방법 등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노랫말이 지닐 수 있는 문학성을 고려했으리라 짐작한다. 실제로 이 시기에 나온 대중가요 노랫말 중에는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 그 시절에 나온 대중가요 중에 오늘날까지 절창으로 불리는 것이 많다는 게 이를 증명하기도 한다. 어떤 노래가 생명력을 지닌 채 오랫동안 애창된다는 것은 음악성이든 문학성이든 그 노래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근대 대중가요 작사가와 그들의 작품을 살펴볼 만하다. 하지만 대중가요 가사를 살펴보는 일이 시를 분석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일단 대중가요의 노랫말은 그 음악적 형식을 고려한 채 만들어진 것이다. 말하자면 노래하기에 적합하도록 창작되었다. 그에 따라 시로 치면, 자유시보다 정형시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근대시를 논할 때, 보통 1919년에 주요한이 발표한 자유시, <불놀이>를 언급하곤 한다.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이러한 시에서 ‘근대시’의 시작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가요 가사에서 자유시와 같은 형식을 찾는다거나, 또는 그러한 형태의 가사가 나와야만 문학성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중가요는 애초부터 유절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노래하기에 적합하도록 정형시에 가깝게 창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대중가요 노랫말이 좋게 들리는 것은 단순히 그 가사가 주는 미감 때문만은 아니다. 훌륭한 노랫말이 멋진 선율과 만나 상승효과(synergy effect)를 낼 때, 우리는 그 노래를 선호하고 심지어 그 노래에 열광까지 한다. 그 때문에 노랫말을 분석하면서 음악적 갈래를 고려하고 그에 따라 달라지는 작법이나 특징까지 언급하고자 했다. 물론 당시에 갈래 인식이 명확하거나 완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서도 갈래에 따라 다른 특징이 드러나는 바, 이를 고려하고자 했다. 이렇게라도 음악적 형식을 헤아려 가사의 특징을 파악하고자 했다.
이 책의 목적은 특정 노래가 어떻게 대중의 선호를 받아 인기가요가 되었나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시절에 활동했던 작사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이를 정리하고 분석하면서 노랫말에 나타나는 특성들을 찾아내는 것에 주력했다. 아울러 각 작사가들의 생애 등을 재정리하면서 기존의 오류를 바로잡고 그들의 삶이 노랫말에 끼친 영향 등도 살펴보려 했다. 특히 작사가마다 선호하는 어휘가 있는 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언급하였다. 이를 위해 어휘빈도수를 따져 보고 이를 실제 작품 분석에 활용하고자 했다.
한편 이 책의 제목을 ‘사랑과 죽음의 노래’라 붙인 것은 “예술은 본질적으로 사랑과 죽음의 노래”라는 김동규의 말(멜랑콜리 미학, 문학동네, 2010, 11쪽)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예술, 노래는 본질적으로 사랑과 죽음의 노래이다. 도대체 인간의 삶에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노래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찰스 다윈이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조상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둘 다든, 분명한 언어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기 전에 멜로디와 리듬으로 서로를 매혹시키려고 했다.” 태초에 노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수많은 노래가 사랑 노래인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처럼, “삶이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행진”을 의미하니까. 삶이 그러하듯, 모든 사랑의 끝에 이별이 있다. 이별 없는 사랑이나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애초부터 비극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예술작품이 사랑의 기쁨보다 사랑의 슬픔을 노래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는 영감이나 창의성과도 연결이 된다.
뇌 과학 측면에서 볼 때, 창의성과 뇌의 시상(thalamus) 부위의 도파민 수용체의 밀도는 반비례한다고 한다(김종성, 뇌과학 여행자, 사이언스북스, 2011, 340쪽). 도파민은 세라토닌과 함께 행복이나 즐거움 등을 느끼도록 해주는 호르몬이다. 그런데 창의성과 도파민 수용체의 밀도가 반비례한다는 것은, 창의성이 행복할 때보다 불행하거나 고통스러울 때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해보면 수많은 예술 작품이 만족이나 풍족함이 아니라 결핍과 상처와 아픔과 고통 속에서 꽃을 피웠다. 노래에도 이별 노래가 많은 이유가 그것이다. 게다가 슬픔은 슬픔을 통해 치유되는 것이 아니던가!


비극적 낭만성과 희극적 세태성

“가장 슬픈 것을 노래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노래한 것이다.”
-박재삼 -

이 시기 대중가요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비극적 낭만성과 희극적 세태성이 그것이다. 아직 완벽한 방법론으로 정착시키지는 못했으나 이 책 중간 중간에 비극적 낭만성을 언급하거나 희극적 세태성을 에둘러 표현하곤 했다. 나름대로 대중가요 가사 연구 방법론으로 고안해보고 싶었으나 이론화시키려면 갈 길이 멀다. 그 때문에 이 책에서는작가론 각론에서 가볍게 언급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언젠가는 좀 더 완전한 이론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이 시기 희곡이나 대중가요를 ‘신파(新派)’로 설명하는 입장이 있다. 하지만 이 용어로는 이전 시기 작품의 연속성이나 계승된 측면을 이야기할 수 없고, 동시대 작품 중 신파와 다른 질감을 드러내는 작품을 설명하지 못한다. 아울러 현대에 나오는 수많은 작품들과의 연계성도 설명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신파는 오직 특정 시대, 특정 작품에만 적용할 수 있는 용어이다. 신파가 특정 시기 특정 작품에 유효한 용어일 수 있으나, 이는 단절만 설명할 수 있을 뿐 연속선상에서 계승을 말하기엔 부적합하다.
이에 반해 비극적 낭만성과 희극적 세태성은 통시적으로 연속성과 단절성을 아우를 수 있으며, 상반된 두 방향의 모든 작품들을 포섭할 수 있다. 작사가들의 작품은 작가마다 독특한 질감을 드러낸다. 어휘, 주제, 구성 방식 등에서 모두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작가들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비극적 낭만성과 희극적 세태성이다. 그리고 둘 중에서 비극적 낭만성이 더 많이 나타난다. 슬픈 노래가 더 많은 것과 같은 이유이다. 서양의 ‘멜랑콜(melancholy)’와 유사한 개념인 비극적 낭만성은 말 그대로 ‘비극’과 ‘낭만’이 결합된 것이다. 풀어서 말하면, ‘슬프도록 아름다운’ 내지는 ‘슬프지만 아름다운’이 되겠다.
그런데 신파와 달리 비극적 낭만성은 근대 이후에 발명되었거나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상식으로 생각해 봐도, 과거에 나온 수많은 노래에서 우리는 비극적 낭만성을 떠올릴 수 있다. <황조가>나 <공무도하가>와 같은 고대 가요에서조차 비극적 낭만성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 시대마다 비극적 낭만성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구체적인 내용이 달라질 뿐이지, 모든 작품은 애초에 비극적 낭만성이나 희극적 세태성을 보여준다 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신파’가 아닌 ‘비극적 낭만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김억, 이하윤, 유도순 등의 가사에서 이전 시기 전통가요와의 연속성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연속성을 아우르며 작품을 분석하려면 ‘신파’라는 용어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비극적 낭만성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희극적 세태성을 언급할 수 있다. 희극적 세태성은 코믹 송(comic song)에 해당하는 ‘만요(漫謠)’에서 찾을 수 있다. 보통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정서로 ‘한(恨)’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흥’이나 ‘신명’도 있다. ‘한’이 ‘눈물로 눈물 닦기’라면, ‘흥’이나 ‘신명’은 ‘웃음으로 눈물 닦기’이다. 시대마다 작품마다 ‘비극적 낭만성과 희극적 세태성’ 중 하나가 우세하게 나타날 수 있으나, 그 중 한 가지만으로 우리의 삶과 노래를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희극에 ‘세태성’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만요처럼 웃음을 지향하는 노래나 작품의 경우는 당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상태나 형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풍자든 해학이든 세태와 관련된 웃음을 보여주는 것을 ‘희극적 세태성’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만요뿐 아니라 이전 시기와 이후 시기 예술 작품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가면극이나 현대의 희극 내지 코믹 송(comic song) 등에서 희극적 세태성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이 시기 대중가요뿐만 아니라 이전 시기와 이후 시기의 대중가요 등의 작품들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비극적 낭만성과 희극적 세태성은 유용할 수 있다. 단절과 계승의 모든 요소들을 아우르면서 비극적 낭만성과 희극적 세태성의 같고 달라진 양상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어 우리나라 작품의 비극적 낭만성과 희극적 세태성을 정리하고 나면, 서양이나 여타 나라의 그것들과 같고 다른 특성도 밝힐 수 있다. 단절이 아닌 계승을 고려하고, 모든 작품들을 아우를 수 있는 이론으로 비극적 낭만성과 희극적 세태성을 정리하고 발전시키고 싶었으나 아직 이론화 초기 단계에 있다.
앞으로 비극적 낭만성과 희극적 세태성을 이론으로 정립시켜 대중가요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작품을 분석하는 도구로 삼고 싶다. 이 책은 그작업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에 앞서 시험적으로 시도하는 시론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목차
*서막
사랑과 죽음을 노래한 근대 대중가요 작사가들

금릉인
향수와 향토성을 노래하다

김성집
일상의 소재화와 해학성을 추구하다

김억
민요 전통의 계승과 변이를 보여주다

박노홍
반복과 상호텍스트성의 가사 작법을 구현하다

유도순
애상성과 향토성을 지향하다

이하윤
애상과 슬픔의 정조를 표현하다

조명암
갈래에 따라 다른 정서를 지향하다

반야월
낭만적 경향과 사실적 경향의 공존을 보여주다

*종막
감사의 말
저: 장유정
노래에 미쳐 노래에 살고 있는 대중음악사학자이자 대중문화평론가인 장유정은 현재 단국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다. 2004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일제강점기 한국 대중가요 연구-유성기 음반 자료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9년에 인천문화재단 주최 ‘플랫폼문화비평상’ 음악 부문상을 수상했다. 2012년부터 ‘근대가요 다시 부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2013년에는 『장유정이 부르는 모던 조선: 1930년대 재즈송』 음반을 제작·발매했다. 2006년부터 노래와 강연을 함께 하며 대중과도 소통하는 그는 현재 한국대중음악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음악발전소 이사,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자문위원, 한국대중가요연구소 전문연구위원 등을 겸하고 있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대중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 『근대 대중가요의 지속과 변모』, 『근대 대중가요의 매체와 문화』, 『노래 풍경: 장유정의 음악 산문집』, 『한국대중음악사 개론』(서병기 공저)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