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한국학연구총서 133 |
한국 태실 연구
심현용 저
50,000원
50,000원
판매중
경인문화사
양장
152*224mm(A5신)
694쪽
2016년 7월 15일
9788949942094
책 소개
1997년 겨울 어느 날, 필자는 경북 울진군 평해읍 삼달리 신래태봉에서 태실유적을 처음 보았다. 바로 조선시대 제9대 임금인 성종의 아들 견석왕자 태실이다. 당시 필자의 눈에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로 인해 태실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필자는 태실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2001년에 처음 태실관련 논문(「울진지역 태실에 관한 시고」, <고문화>57, 한국대학교박물관협회)을 발표했다. 그리고 견석왕자 태실을 접한 지 18년 후인 2015년 태실을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집필하게 되었다.

이 책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인 <조선시대 태실에 관한 고고학적 연구>(2015, 강원대학교)를 수정‧보완하여 출판한 것이다. 학위논문에서 고려시대 태실 부분을 더 자세하게 분석‧보완했으며, 일제강점기 일제가 우리나라 태실을 훼손한 것에 대해 추가 검토하였다. 또한 성주와 사천 두 곳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단종 가봉태실에 대한 진위 검토도 추가하였다. 부록으로 <춘관통고(春官通考)>권68 가례(嘉禮) 태봉(胎峯)편을 번역하고 영인본을 실었다. <춘관통고>는 정조 12년(1788)경 예조참의 유의양(柳義養)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현재 4종만 사본(寫本)으로 남아있다. 이 책에서 번역한 것은 1899년 이전(1825. 2.~1833. 6.) 사본으로 추정되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점을 고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실이 무엇인지 생소해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에게 생소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그에 대한 연구 성과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태실의 기원은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기록으로 전하는 것은 삼국시대 신라 김유신의 태실이 최초이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그 전통은 계속된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인종 태실이 유일하게 확인될 뿐이다. 태실은 조선시대에 활발하게 조성되었는데, 이로 인해 조선 왕실의 3대 문화 중에 하나가 되었다.

조선 왕실의 3대 문화를 꼽으라 하면 궁궐(종묘), 왕릉, 그리고 태실이다. 왕릉은 죽은 자를 모시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과거를, 궁궐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현재를, 태실은 태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의미에서 미래의 개념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특히 태실은 태어남[生]과 삶[活]의 개념이 복합적으로 스며있으며, 동시에 미래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왕릉은 무덤으로 죽음[死]의 공간을 뜻하는데, 태실은 비슷한 방법으로 땅에 묻히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제는 태실에 내포되어 있는 현재성 내지 미래적 의미를 간파하고 태실을 무참히 훼손하여 조선, 즉 우리나라의 미래를 말살하려 하였다. 전국에 산재한 태실을 파헤쳐 그중 54위의 태를 서삼릉으로 옮겨 태실 집장지를 만들었다. 생(生)과 활(活)의 개념을 내포한 태실을 사(死)의 개념인 무덤 영역에 옮겨 놓음으로써 태실을 죽음[死]의 개념으로 바꾸려 한 것이다. 이로써 역사 속에서 진행되었던 우리나라 태실문화의 역사와 전통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태실에 대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 필요성을 느낀 필자는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태실을 선택하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삶의 원동력이었다. 석사과정에서 신라고고학(2008, <고고자료로 본 신라의 강릉지역 진출>, 경북대학교)을 전공했지만, 박사과정에서는 전공을 바꾸어 태실을 연구하기로 했다. 당시 태실의 소재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태실을 전수조사 하는데 10년 넘게 걸렸다. 연구의 진척도 없었다. 위치도 모르는 태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 이 산 저 산을 찾아 다녔다.

공부하면서 많은 분들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았다.

역사학이나 고고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1988년 한국관광대학교(현, 경주대학교) 1회로 문화재학과에 입학했다. 군 복무를 거쳐 1993년 복학해서 김창호 선생님 연구실에서 지내게 되었다. 특히 그해 선생님께 부탁해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약 두 달간 발굴조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철없는 학부생인 나에게 학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 김창호 선생님의 지도는 내가 고고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또 정우택 선생님은 고고학을 공부하겠다던 필자에게 수많은 불교문화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불교미술도 함께 공부해야 학문의 폭을 넓힐 수 있다 하시면서 불교미술 보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2000년 경북대학교 사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역사고고학을 하는 전공자는 문헌사를 모르고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에서 일부러 사학과를 선택하였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이때 학문하는 방법을 지도해 주시고 한문의 길을 인도해 주신 주보돈 선생님의 가르침은 학문의 깊이를 더하게 만들어 주셨다. 또 고고인류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고고학적 연구법을 가르쳐 주신 이희준‧박천수 선생님의 은혜도 잊을 수 없다. 신라의 동해안지역 진출과정을 고고학적으로 공부하겠다는 필자는 동해안지역의 고고학을 경험하기 위해 강릉에서 발굴조사를 하기도 하였다. 2004년 경상북도 학예연구사 공채시험에 합격한 필자는 그해 12월 27일 울진군청에서 학예연구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로써 필자의 꿈은 이루어졌다.

2009년 강원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유재춘 선생님은 중‧근세 고고학의 나아갈 방향과 연구방법을 지도해 주셨다. 손승철 선생님은 문헌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시고 그 분석법을, 최복규 선생님은 유적, 유구 및 유물의 분석법을 가르쳐 주셨다. 이들 선생님의 은덕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박사학위논문 외부 심사위원으로 전국 태실의 연구방법과 고고학적 접근방법을 가르쳐 주신 단국대학교 정영호 선생님과 경주대학교 강봉원 선생님의 가르침은 부족한 논문을 발전되게 해주셨다.

계명대학교 노중국 교수님과 성림문화재연구원 박광열 원장님, 경민대학교 장원섭 교수님은 같은 고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다른 격려와 애정을 베풀어 주셨다. 한국국학진흥원의 김주부 선생님은 한문 번역의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도움을 주셨다. 김주부 선생님은 부록인 󰡔춘관통고󰡕도 필자와 함께 번역하였는데, 대부분 선생님의 힘으로 된 것이다. 강원대학교의 홍성익 선생님,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의 이상수 선생님,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인 김도현 선생님, 하슬라문화재연구소의 홍영호 선생님은 동학을 하는 후배라는 이유로 곁에서 북돋아 주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춘천의 박미현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태실관련 신문을 찾는데 도움을 주셨으며, 성림문화재연구원의 박기혁 선생님, 팜클의 장종민 선생님, 명성프로젝트의 조윤희‧유숙향 선생님은 도면 작성을 도우셨다. 성주의 박재관‧곽명창 선생님, 예천의 이재완 선생님, 예산의 이강열‧박성묵 선생님, 진천의 이인석 선생님, 단양의 지성룡 선생님, 울산의 박채은 선생님, 안산의 이현우 선생님은 태실을 찾는데 도움을 주셨다. 후배 조성윤‧김성우‧이동주‧이민형‧양윤미 선생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또한 울진문화원 울진향토사연구회 연구위원인 장기영 친구는 태실 조사시 동행하여 도움을 주었다. 이 모든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연구 성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필자는 이제 역사(歷史)에 대한 개념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역사의 정의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의 이론이 나와 있다. 그중 많이 알려진 것이 에드워드 카(1892~1982)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미래를 추가하고 싶다. 필자는 강의를 할 때 ‘역사란 과거가 아니고 미래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유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역사는 점(點)으로 연결되어 있는 선(線)에 비유할 수 있다. 과거에서 저만치 나가있는 미래를 점으로 찍으면 과거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 역사학인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멈추지 말고 현재와 미래를 보는 미래지향적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과거인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고 미래인 것이며, 역사를 배워서 알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역사라는 영역은 단순히 학자들이 학문을 하기 위한 분야가 아니며, 우리 삶속에 살아 있는 사회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태실은 과거에 조성되었지만, 우리나라 국운(國運)이 영원하기를 염원한 미래에 대한 준비였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통문화 중 조선 왕실의 궁궐(종묘)과 왕릉은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태실은 국내의 지정문화재조차 많이 되어 있지 않은 형편이다. 태실은, 전 세계 보편적으로 행해진 태 처리 습속인 장태문화의 일종이나,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확인되는 독특한 문화이다. 그러므로 충분히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다. 최근 들어 몇몇 지자체에서 태실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태실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 규명에 어려움이 있었다. 여기에 필자의 조그마한 이 연구 결과가 우리나라 태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 태실을 집대성한 최초의 연구서이며, 태실 연구의 시작임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태실 조성으로 인해 발생되는 정치‧사회‧경제적 측면은 다루지 못하였다. 향후의 과제로 두고자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인 ‘태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 책이 어느 정도 답할 수 있는 학술적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형편에도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 해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아내와 두 딸 은수‧지수에게는 주말이면 태실지를 찾아 전국을 떠도느라 또 공부하느라 가정에 충실하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목차
제1부. 서론
Ⅰ. 연구사 검토
1. 출토 유물과 태실 구조 등 고고학적 연구
2. 태실의 주인공과 의례 및 왕실의 출산 등 문헌사적 연구
3. 태실의 입지와 풍수사상의 상관관계 등 풍수지리적 연구
Ⅱ. 연구 목적과 방법
1. 연구 목적
2. 연구 방법

제2부. 한국 태실의 기원과 전개
Ⅰ. 한국 태실의 기원
1. 삼한시대
2. 삼국시대~후삼국시대
Ⅱ. 고려시대 태실
1. 태실의 현황과 진위
2. 고려시대의 태실 제도
3. 고려시대의 태실 구조
Ⅲ. 조선시대 태실
1. 조선 전기 태실의 제도적 확립
2. 조선 후기 태실의 제도적 변화
3. 일제강점기의 태실 훼손

제3부. 태실의 입지와 일반 구조
Ⅰ. 태실의 입지와 분포
1. 태실의 입지와 조성 이유
2. 태실의 분포와 등급
Ⅱ. 아기태실의 구조와 유물
1. 아기태실의 구조
2. 아기태실의 유물
Ⅲ. 가봉태실의 구조와 유물
1. 가봉태실의 구조
2. 가봉태실의 유물

제4부. 조선시대 태실 유물의 양식과 편년
Ⅰ. 아기태실비의 양식과 편년
1. 아기비의 현황과 시기
2. 아기비의 명문 구성 검토
3. 아기비의 유물별 형식 분류와 편년
4. 아기비의 양식과 변천
Ⅱ. 태실석함의 양식과 편년
1. 태함의 현황과 시기
2. 태함의 유물별 형식 분류와 편년
3. 태함의 양식과 변천
Ⅲ. 중앙태석의 양식과 편년
1. 중앙태석의 현황과 시기
2. 중앙태석의 유물별 형식 분류와 편년
3. 중앙태석의 양식과 변천

제5부. 고고자료와 문헌기록으로 본 태실의 조성과 구조
Ⅰ. 영주 소헌왕후 태실의 조성과 왕비 태실 구조
1. 태실의 현황
2. 문헌기록과 유물로 본 태실 조성
3. 왕비 태실의 구조
Ⅱ. 성주 선석산 태실의 조성과 태실구조
1. 태실의 위치
2. 유물 현황
3. 문헌기록으로 본 태실의 조성
4. 태실의 구조와 세종의 가계
Ⅲ. 성주와 사천의 단종 가봉태실 진위와 태실구조
1. 성주의 단종 가봉태실 현황
2. 사천의 단종 가봉태실 현황
3. 단종 가봉태실의 진위와 태실구조
Ⅳ. 울진 견석왕자 태실의 조성과 태실구조
1. 태실의 현황
2. 태실의 구조와 시기
3. 태주와 성종의 가계

제6부. 결론

참고문헌
부록 : <춘관통고>권68 가례 태봉
저: 심현용
◊1968년 경상북도 울진 출생
◊강릉명륜고등학교 졸업
◊경주대학교(구, 한국관광대학교 1회) 문화재학과 졸업(문학사, 문화재학 전공)
◊경북대학교대학원 사학과 석사과정 졸업(문학석사, 역사고고학 전공)
◊강원대학교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고고학 전공)
(전) 경북과학대학 박물관 학예연구원, 강원문화재연구소 연구원
(현) 울진군청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 학예연구사, 한국태실연구소 소장

저서
<조선왕실의 태봉>(공저), <한국고고학전문사전 -고분편>(공저), <울진봉평신라비>(공저), <별고을 성주, 생명을 품다 -선석산 세종대왕자 태실 이야기->(공저), <울진 대풍헌과 조선시대 울릉도‧독도의 수토사>(공저) 외 다수

논문
「조선시대 태실에 관한 고고학적 연구」, 「조선왕실 태실석함의 현황과 양식변천」, 「조선 왕실의 아기태실비에 대한 양식과 편년 재검토」, 「조선시대 태실의 입지에 대한 재검토」, 「조선 단종의 가봉태실에 대한 문헌‧고고학적 검토」, 「성주 선석산 태실의 조성과 태실구조의 특징」, 「고고자료로 본 신라의 강릉지역 진출과 루트」, 「고고자료로 본 5~6세기 신라의 강릉지역 지배방식」,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재판독과 보존과학적 진단」, 「석조물로 본 울진지역 불교문화」,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정책에 대한 고고학적 시‧공간 검토」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