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는 꽃이 피고 새가 운다. 듬직한 나무와 무성한 풀잎이 있고 초록의 새순이 있다. 우람한 바위와 깎아지른 벼랑과 고운 흙길이 있다. 도심에선 느낄 수 없는, 산에 가야만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산만의 아름다움과 정취가 있다. 운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산만이 내줄 수 있는 산만의 아름다움과 정취가 있다. 산에는 그러나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봉우리마다 전설이 서려 있고 바위마다 설화가 새겨져 있다. 절집마다 역사가 있고 돌멩이 하나에도 사연이 있다. 말하자면 산에는 그 산만큼이나 오래된 나이테가 있고 역사의 족적이 있다. 산은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지만 이런 흔적들은 쉬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그 속살을 쉽게 내보이지도 않으니 산마다 새겨진 시간의 눈금을 읽는 일은 별도의 노력을 요구한다. 내가 사랑하는 산을 이해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기꺼이 책을 펼쳐든다.
<이야기 있는 산행>은 바람직한 산행문화를 생각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산과 산 주변에 깃든 역사와 인물, 옛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서 산행을 할 때 그것들과 교감을 하면서 걷고, 마치고 돌아와 오래토록 기억에 남는 산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다녔다. 그때 이미 60이 넘었던 은사 석전 이병주 선생을 만났다. 석전 선생은 매달 우리를 답사를 데리고 다니고, 여름방학에는 우리 전체를 이끌고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기도 했다. 그 극성스러운 은사 석전 선생 덕에 몸과 머리와 가슴 속에 산행의 유전자를 심었다. 90년대 초, 불교계와 인연을 맺었다. 산중에서도 가장 명당에 자리잡은 사찰을 자주 찾게 되고, 스님들만이 알고 다니는 외진 산길을 걷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그 동안 산언저리나 절 주변의 옛이야기들을 보고 들은 것들을 모아서 《기도처를 찾아서》 등을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