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1 편조백방(遍照百邦), 투시백년(透視百年)의 기세로
강인덕 저
3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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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
경인문화사
종이 표지
152*224mm(A5신)
472쪽
2022년 12월 30일
9788949966526
책 소개
“전쟁을 억제하는 길은 전쟁을 준비할 때만이 가능하며,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본서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최고의 북한 전문가이자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의 회고록이다.
국가 중앙정보기관에 근무했던 요원들 사이에는 묵시적 준칙 같은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근무시 인지한 기밀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 중앙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KCIA)」에서 16년간 근무한 제1세대 정보분석관이였던 필자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두 가지 이유를 가지고 이 묵시적 준칙의 일부를 파기하기로 했다. 그 하나는 후대 집권세력들이 앞을 다투듯 주창한 「중앙정보부」와 그 근무자에 대한 비난과 매도에 답하기 위함이며, 또 다른 하나는 필자의 경험을 통해 직업적, 전문적 실무요원과 정보분석관의 양성과 성장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이들의 역할이 국가안보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리기 위함이다.
본서는 시기별로 2권으로 나눠져 있다. 제1권에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저자가 6.25 때 월남하여 중앙정보부 정보분석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활동과 경험이 담겨있고, 제2권에는 1979년 중앙정보부를 떠난 이후 재단법인 극동문제연구소 이사장・소장, 김대중 정부 초대 통일부장관을 거쳐 최근까지의 북한문제에 대한 저자의 활동과 분석을 담고 있다. 끝으로 평생 북한문제를 연구・분석해온 제1세대 정보분석관으로서 후대 중앙정보 분석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적으며 마무리했다.
목차
출판에 즈음하여

제1부 1950년대 실향(失鄕)・고행 속에 평생 갈 길을 찾다
8・15 해방의 기쁨 : 곧이어 닥친 이산(離散)의 아픔
평양 제1고급중학교 시절 그리고 월남
학도의용대 입대 : 정훈요원으로
동두천 101예비사단에서의 병영생활
「위문편지」로 맺어진 천생배필
한국외국어대학 노어과 입학
금기된 「공산권 연구」의 행운을 잡다
해병장교 임관

제2부 1960년대 풋내기 중앙정보 분석관 : 뼈저리게 느낀 책임감
4・19 혁명 : 군인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곳에 있었을 것
사회혼란기 해병대 전략분석관의 고민
「올 것이 왔다」 : 5・16 군사정변
「5・16 혁명」과 중앙정보부 창설
중앙정보부 해외정보국 시사정보과 보직
쿠바 사태 판단 : 처음 겪은 해외정보 분석관의 시련
중소과 과장 시절 : 실시간 첩보분석을 통한 공산권 연구의 특전
한일회담 반대 소용돌이와 「민족적 민주주의론」 비판
한일회담 : 조기 타결을 위한 분석관들의 노력
베트남 파병 : 중앙정보부 조사단의 일원으로 느낀 것
「1・21 사태」 예측 판단 보고와 청와대 기습 사건
미 해군 첩보함 푸에블로호 사건과 한・미 공조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일본항공(JAL) 요도(Yodo)호 납치사건
김일성의 대중군(大衆軍) 사상과 권력 유지를 위한 북한군 사병화(私兵化)

제3부 1970년대 전반 고향땅을 다시 밟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기를 조성한 「8・15 평화통일구상 선언」 준비 참가
김일성이 제시한 「인민민주주의혁명」에 대한 대응
새로운 대북전략의 연구와 남북적십자회담 제의
남북 고위급 인사의 비밀 교환방문 제기와 실현
「7・4 남북공동성명」의 탄생(?) 경위
남북대화와 「10월 유신」 발표
남북조절위원회 대표단원으로 평양 방문 (1차 방문)
평양 체류 첫날 : 모란봉 초대소에서 일어난 일
김일성의 초대 식사 : “합작합시다!”
청와대에서의 귀환보고 : “전략적 변화는 없습니다”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대표단의 서울 방문 : 지켜지지 않는 ‘대남 비방방송 중지’
제2차 남북조절위원회 회의 참가 : 두 번째 평양 방문
만경대 방문에서 생길 일 : 6・25 때 행방불명된 넷째 형님 소식을 듣고

제4부 1970년대 후반 다양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역할 경험
「김대중 납치사건」과 추락하는 중앙정보부의 위신
베트남의 공산화와 특수 홍보활동 전개
각종 정보원(情報源)의 발굴 노력
북한의 「8・18 도끼 만행 사건」과 그 대응 : 미국의 강력 대응은 없었다
북한 핵 정보의 과소평가 - 나의 오판
심리전국 재건과 「자유아카데미」 창설 : 자유중국의 정치사상교육 실태 시찰
건전한 노사관계 형성을 위한 정부 산하 기업의 노동조합 간부교육
김재규 부장과의 갈등 : 「자유아카데미」 폐쇄
중앙정보부를 떠나다 : 한경직 목사님, “주님께서 강 집사에게 피난처를 주신거야…”
「재단법인 극동문제연구소」 창립, 대만 도피 후 귀국
「10・26 사건」 : 평고 동기동창 정인형의 순직
저: 강인덕
1. 인적사항
성명 : 강인덕 (康仁德)
출생 : 1932년 평양

2. 학력
1945.04 - 1950.09 평양 제1 고급중학교 졸업
1954.03 - 1958.02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사
1966.03 - 1968.02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정치학석사
1973.03 - 1977.02 경희대학교 대학원 정치학박사
- 논문제목, “통일전선연구: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전선”

3. 주요 경력
1963.07 - 1965.01 중앙정보부 해외정보국 중소과장
1965.01 - 1970.12 동 해외정보국 북한과장
1971.01 - 1975.07 동 해외정보국장, 북한국장 겸 남북대회사무국장, 남북조절위원회 위원
1975.07 - 1977.01 동 심리전국장
1977.01 - 1978.05 동 북한국장
1979.01 - 1998.03 재단법인 극동문제연구소 이사장・소장
1998.03 - 1999.03 통일부 장관
1999.06 - 2013.03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학 초빙교수
2013.03 - 현재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석좌교수

4. 주요 포상관계
1970. 03. 13 홍조근정훈장 (대한민국 정부)
1976. 06. 10 보국훈장 천수장 (대한민국 정부)
1988. 02. 11 국민훈장 모란장 (대한민국 정부)
1992. 05. 16 5・16민족상[안보부문] (5・16민족상 재단)
2002. 06. 15 청조근정훈장 (대한민국 정부)


5. 주요 저술
• 2017. 『朝鮮半島 地政學クライシス』. 日本經濟新聞出版社 (編著)
• 2016. 『解剖 北朝鮮リスク』. 日本經濟新聞出版社 (編著)
• 2004. 『남북회담 : 7.4에서 6.15까지』. 극동문제연구소.
• 2004. 『北朝鮮問題をどう解くか-東アジアの平和と民主主義のために』. 聖學院大學出版會. (小田川興 共編)
• 2001. “和解と協力科程入った南北關係: 南北首腦會談の成果と今後の展望,” 『轉換期の東アジア』. 御茶の水書房
• 2000. “金大中大統領の「太陽政策」と韓國の立場,” 『朝鮮半島: 南北統一と日本の選擇』. 日本評論社.
• 1992. 『언어・정치・이데올로기』. 을유문화사.
• 1988. 『개혁과 개방 : 중국주요논문선집』. 극동문제연구소.
• 1988. 『페레스트로이카 : 소련주요논문선집』. 극동문제연구소.
• 1987. 『이념교육 지도전서』. 극동문제연구소.
• 1985. 『원전공산주의 대계 : 상・하』. 극동문제연구소.
• 1984. 『공산주의 비판』. 극동문제연구소.
• 1983. 『공산주의 사전』. 극동문제연구소
• 1981. 『알기쉬운 공산주의』. 극동문제연구소.
• 1978. 『공산주의와 통일전선』. 극동문제연구소.
• 1974. 『북한전서 : 상・중・하』. 극동문제연구소.
• 1972. 『공산권 총람』. 극동문제연구소.
• 1970. 『국민승공사상 대계』. 신현실사.
• 기타 단행본 및 국내외 강연, 세미나 발표, 논문, 칼럼, 기고문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