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추봉(秋峰) 남승우(南勝愚) 선생이 남긴 글들을 번역한 것이다. 『추봉집(秋峯集)』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고, 별도로 『추봉속집(秋峯續集)』 2권 1책이 있다. 『추봉집(秋峯集)』에는 시 246편, 서 64편, 잡저 14편, 서문 45편, 기록문 39편, 발문 23편, 명문 17편, 잠언 7편, 사 9편, 상량문 23편, 축문 11편, 제문 45편, 행장 13편, 유사 1편, 전기 3편, 비문 4편, 묘지 10편, 묘표 23편, 묘갈명 41편이 실려 있다. 『추봉속집(秋峯續集)』에는 묘표 1편, 시 1편과 부록으로 장수시 서문과 장수시, 생일 감회시와 차운, 남추봉시권 표제문, 각종 기문과 명문, 암서정 차운, 가산정 상량문, 만사, 제문, 행장, 묘갈명, 발문 등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 『추봉집(秋峯集)』은 전문을 번역하였으며, 『추봉속집(秋峯續集)』은 문중과 협의하여 추봉이 직접 작성한 1권의 묘표 1편, 시 1편을 추가로 번역하고, 행장과 묘갈명과 발문은 기존의 번역을 다소 손질하여 새롭게 하였다.
목차
발간사 │ 해제
권1 시(詩) 『대학(大學)』 성의(誠意) 문장을 읽고
여섯 금수(禽獸) 시 (5언 6소절) 누구를 위하여 이익을 좇는가 또한 허공을 붙잡지 말지니 슬프고 슬프다 술병을 들고 다하고 다하여 힘써 노력함
금오산(金烏山) 아래에서 구정(龜亭) 선조께서 길(吉) 야은(冶隱)께 증정한 시를 읽고 삼가 운율을 이어(임술년) 이대원(李大遠)[영현(永鉉)]에게 화답하여 증정함 심(沈) 어른 공옥(公玉)[진희(鎭禧)]을 애도하며 주(周)옥봉(玉峯)[기일(基鎰)]・심(沈)직와(直窩)[두환(斗煥)] 어른이 새 우거를 방문했을 때의 심정(갑자년) 일중정(日中亭)에서 여러 붕우와 주고받음 9일에 고소산(姑蘇山)에 올랐는데 대원(大遠)이 역시 도착하였다. 국화 뿌리를 무산정사(武山精舍)에서 빌리고, 2소절 시로써 바로잡음(을축년) 농산정(籠山亭)에서 현판 위의 운율에 이어 해인사(海印寺)에서 한양(漢陽)에서의 감회(8소절, 병인년) 장(張)회당(晦堂) 어른[석영(錫英)]을 애도하며 문(文)겸산(謙山) 어른[용(鏞)] 애도문 이(李)소탄(小灘) 어른[원하(源夏)]에게 증정함(◇ 작은 서문 병기) 기(奇)송사(松沙) 어른[우만(宇萬)]을 애도하며 『주역』을 읽는데 정(鄭)농산(農山) 선생[면규(冕圭)]이 서신으로 너무 조급하다고 하며 『중용』과 『대학』을 읽기를 권유하니 감히 이 발언과 의지로 다시 재단하여 교시할 것을 요청함 모친 생신 아침에(11월 13일) 정(鄭)율계(栗溪) 어른[기(琦)]께서 호남(湖南) 새 거처로 가시는 것을 전송하며 눈 오는 밤 동파(東坡)의 취성당(聚星堂) 설경 시에 이어 시옹(是翁) 스승에게 올림
시옹을 모시고 초계(草溪)서당에서 수업하며 남송사(南宋史)를 열독하고 ‘영웅의 눈물[영웅루(英雄淚)]’이란 제목으로 이(李)춘전(春田) 회이(晦而)와 함께 시부를 짓다(무릇 30편) 천목산(天目山)이 붕괴되다 한 쌍의 사당[쌍묘(雙廟)] 죽어서 송나라의 귀신이 되어 세 가지 모르는 것 안석 위의 기록 지수(止水)의 한탄 고우(高郵)의 한탄 상주(常州)의 애통함 이불(李芾)이 죽음 대궐을 바라보며 절함 항주(杭州) 조류가 옮겨가다 제운(梯雲) 걸음 어찌 항복하는 장군이 되겠는가 미립(米立) 피 흐르는 소리 마개(馬墍) 동청수(冬靑樹) 황릉 천주(泉州)의 곡조 『대학(大學)』 강독 애산(厓山)의 애통함 태풍[구풍(颶風)]이 끌다 나물죽과 국으로 허기를 면하다 나의 성은 문(文)이다 유자준(劉子俊)을 삶아 죽임 내 일은 끝났다 한탄의 글 연경[연(燕)] 역전의 저녁 스스로 술회함
정(鄭)율계(栗溪)를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하고 오(吳)화익(和益)[석표(錫杓)]을 추도함 정(鄭)농산(農山) 노옹[면규(冕圭)]을 애도하며 갑천정(甲川亭) 강독회에서 여러 선비와 함께 읊음 입암(立巖) 친족 어른[정우(廷瑀)]을 방문함 여행 중 칠석(七夕)에 비가 내리니 오(吳)노포(老圃)[응천(應千)] 애도시(2소절) 나(羅)죽우(竹宇) 어른[영성(永成)]을 애도하며 권(權)추연(秋淵) 문견(文見)의 방문을 받고 정(鄭) 어른 치정(穉貞)[우영(宇永)]을 애도하며 이(李)소남(小南) 어른[상두(相斗)]을 애도하며 설(薛)송석(松石) 명극(明極)[병두(炳斗)]이 『추강집(秋江集)』 중의 운율을 사용한 일곱 걸음 시로 기증받음 김성옥(金聖玉)[문옥(文鈺)]에게 증정함
송(宋)정산(靖山)[호곤(鎬坤)]을 애도하며 송(宋)계산(桂山)[재락(在洛)]을 애도하며 주(周)옥봉(玉峯)을 애도하며 정묘년[정묘(丁卯)] 3월 14일에 산촌의 방에서 쓰는 편지(3수) 외사촌형 율계(栗溪) 노옹[도봉균(都奉均)]이 밭갈이 시 1편을 보여주니 그 운율에 이어 증정하다 농암(農巖)의 매화 시에서 ‘성긴 그림자 비스듬이 비치니 물은 맑고 얕구나’를 사용하여 운율을 삼으니, 이어 ‘숨은 향기 떠돌고 달은 황혼에 떴네’로 사족을 붙여 남은 뜻을 발현하다 재앙이 발생하여 축문을 쓰고 시로 화답하여 펴서 뜻을 보이고, 그 운율을 화답하여 사용하며 아울러 정옥(正玉)에게 편지를 쓰다 두문불출하고 상심했을 때 우연히 율시 한 편을 지어 권(權)만재(萬齋)[춘일(春一)]・일헌(一軒)[재환(載丸)]에게 증정하다 주씨(周氏) 단천정(端川亭) 운율에 이어 산촌에 거처하며 가을이 되어(16소절) 이(李) 어른[규석(奎錫)]을 애도하며 석(石)재명(載明)[찬곤(贊坤)]을 애도하며 갑천정(甲川亭) 강독회 뒤 여러 어른과 어진 이를 모시고 함께 읊다 김(金)희중(希仲)[동현(東鉉)]을 애도하며 김(金)형부(亨夫)[철수(哲洙)]를 애도하며 운율에 이어 최(崔)경서(敬恕)[무열(武烈)] 앙미당(仰彌堂)에 쓰다 또 여덟 경치 시에 이어 장인 이래헌(李萊軒) 공[원칠(源七)]을 애도하며 임헌(任軒)・추연(秋淵)이 내 시에서 버릇처럼 이전 운율을 사용하는 것을 조롱하므로 노련한 두보(杜甫)로써 옹호하다 두 군자가 각자 재빨리 시를 써 보냈는데 풍자가 더 절실하니 또 해명하다 유(柳)돈재(敦齋) 어른[상대(相大)]을 애도하며 김(金)순형(舜衡)[종식(鍾植)]을 애도하며 최(崔)원재(源齋) 어른[국환(國煥)]이 바리때를 전달하는 시로써 화답할 것을 탐색하니 남(南)덕부(德夫)[병우(秉祐)]에게 칠보시를 증정함 이(李)자애(紫厓)[병규(炳奎)]를 추도함 심(沈)직와(直窩)를 애도하며 전(田)순형(舜衡)[기진(璣鎭)]이 방문하여 『추강집(秋江集)』의 운율을 집다 관해정(觀海亭)에서 한강(寒岡)선생의 운율을 사용하다 춘오(春塢) 친족 어른[병희(炳熙)]이 집 뒤에 작은 정원을 개척하고 각종 화훼를 파종하여 아주 잘 정비하였으므로 근체시[근체(近體)] 한 편을 지어 성의를 보이고 운율을 나누어 받들어 화답함 네 가지 괴상함 정(鄭)소재(素齋)[찬규(瓚圭)]가 산음(山陰)의 여러 도반을 결집하여 장차 풍악산[풍악(楓嶽)] 여행을 떠나려고 진(陳)도여(道汝)][시엽(時曄)] 우거에 모여 머물렀는데, 정(鄭)창수(蒼樹)[형규(衡圭)]・조(趙)척암(拓庵)[한규(澣圭)]도 역시 도착하였으므로 배로 진해만(鎭海灣)을 유람함
권2 시 정(鄭)율계(栗溪)・이(李)과재(果齋)[교우(敎宇)] 여러 공이 금산(錦山)으로 유람하려고 진주(晉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기한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으니 내가 심(沈)군 정옥(正玉)과 사천(泗川)으로 출발하여 용현점(龍見店)에서 숙박함 삼천포(三千浦)에서 무림(茂林)을 지나며 금산(錦山) 정상 봉우리에 올라 금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공을 만나 다시 보리암(菩提庵)에 오르다 ‘눈이 산허리와 마을 입구를 끌어안고 봄이 초(楚)나라의 후미와 오(吳)나라의 전방에 돌아왔네’로써 운율을 분간하여 ‘회(回)’자를 얻음 노량(露梁)에서 충렬사(忠烈祠)를 알현하고 노량 나루 입구에서 율계(栗溪) 어른을 이별하고 바다 위에서 멋대로 한 소절 소학당(小學堂)에서 이대원・권(權)공술(孔述)[평현(平鉉)]・문견(文見)・이(李)구지(久之)[덕균(悳均)]・제경(濟卿)[보림(普林)]・송(宋)덕언(德彦)[도영(道永)]과 함께 각자 『소학』 1 문장을 강독하고 이어 현판 위 운율에 이어서 농산정(籠山亭)에서 예전 운율에 이어 가야(伽倻) 정상 절경 임헌(任軒)과 장차 만주(滿洲)로 가려는 도중에 운율을 집음 압록강(鴨綠江) 입구를 건너며 환호함 심양(瀋陽)에서 삼학사(三學士)를 조문하고 심정옥(沈正玉)에게 감회가 생겨 두 소절을 부침 요하(遼河) 도중에서 김(金)한경(漢卿)[석규(錫珪)]을 방문하고 고려성(高麗城)을 함께 유람함 고려문(高麗門)에서 김흥무왕(金興武王)의 고사를 추억하며 기자릉(箕子陵)에 배알하고 감흥이 일어 짓다 후산서당(后山書堂)에서 여러 공과 더불어 감회를 노래함 신안정사(新安精舍) 강독회 석상에서 운율을 집어서 남(南)입암(立巖)・이수산(李壽山)[태식(泰植)] 두 어른을 따라 가곡정사(可谷精舍)에서 피서하며 기쁜 비가 내리니, ‘삽시간에 위로가 충만하여 한 철 농사가 풍족해졌으며, 모으고 물리치는 신묘한 공력을 모아 물리치니 고요하여 고통이 없구나’로 운율을 분간하여 ‘만(滿)’자를 얻음 지(池)봉길(奉吉)[형원(亨源)] 대인공자[대인공(大人公)]를 추도하며 주(周)긍암(兢庵)[시연(時淵)]을 애도하며 하극재(何極齋)에서 비로 머물며 이천(夷川) 친족 어른[창희(昌熙)]에게 받들어 올림 임오년 가뭄에 신(申)자하(紫霞)의 ‘고통스런 더위를 지나다[고열행(苦熱行)]’를 사용하여 시를 짓다 작품이 가뭄으로 급박하게 된 것이어서 읽어보니 성의가 곤궁하여 문득 게을렀음을 깨닫고 다시 짓다 월화당(月華堂)에서 노(盧)경산(景山)[수형(秀亨)]에게 화답함 포연(鋪淵)에서 도(都) 어른[재균(宰均)]을 애도하며 낭독하다 남(南)윤숙(允肅)[숙희(驌熙)]을 애도하며 전원으로 돌아온 손(孫)응천(應天)[용수(容秀)]이 ‘산촌 집에 은거하기를 구함’이란 작품을 독송하니 따라서 화답하다 책을 읽으며 을유년 7월 8일 희소식을 듣고 옛 시 1편[즉(則)]을 짓다 이어 짧은 운율 2소절을 얻다 권문견(權文見)과 이제경(李濟卿)을 김해(金海)로 방문하여 열흘을 유람하고 이어 장유동(長有洞) 수석(水石)을 유람하며 완상하면서 운율을 집었지만 끝맺지 못하고 돌아 와 남은 미련이 있어 추가로 지어서 부침 다시 이전 운율을 사용하여 여러 군자에게 붙임 이번 여행에서 이대원(李大遠)이 약속하고 함께 하지 못하였으니 여한이 없을 수 없어서 시를 지어 부치지 못하고 또 쓰면서 안(安)이재(怡齋)[영탁(永鐸)]・허(許)서산(曙山)[식(湜)]이 돌아보고 운율을 남기니, 서산이 돌아간 즉시 시를 지어 두터운 성의를 보이고 또 감사해야 했는데, 한 해가 넘도록 머뭇거려 죄송함 추연(秋淵) 예식 연회에서 돌아온 뒤 시 4편을 증정 받은 두터운 성의를 화답하지 않을 수 없어서 큰형을 모시고 섣달 그믐날 밤을 새며[수세(守歲)] 농암집(農巖集)의 ‘제야[제석(除夕)]’ 운율을 사용하여 감회를 서술함 천왕봉(天王峯)에 올라 함께 유람하는 7인과 ‘두류(頭流)를 두루 살펴보니 천만 개가 쌓였구나’를 사용하여 운율을 분간하니 ‘간(看)’자를 얻고 옥보고(玉寶高)(신라 때 사람인데, 이 산에 들어와 거문고를 배워 소나무에 바람을 일으키는 곡조가 있었다.) 최(崔)문창후(文昌侯)(온 산에 유람한 흔적이 많다.) 일곱 왕자 한(韓)녹사(錄事)[일찍이 이 산에 거처하여 시를 지어 말하기를, “한 조각 낚싯줄이 골로 날아 들어오니, 비로소 이름이 인간 세상에 떨어졌음을 알겠노라.”라고 하였다. 섬진강(蟾津江) 상류에 삽암(鍤岩)이 있는데, 남명(南冥)이 기록하였다.] 일두(一蠹)선생(선생이 시에서 말하기를, “두류산의 천 만 겹을 모조리 살피고서, 외로운 배 또 큰 강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구나.”라고 하였다.) 추강(秋江)선생[「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가 있다.] 김탁영(金濯纓)[일두(一蠹)와 함께 쓴 「동유록(同遊錄)」이 있다.] 남명(南冥)선생[만년에 삼가(三嘉)에서 덕산(德山)으로 옮겨 들어갔다.] 기(奇)고봉(高峯)(천왕봉을 유람한 유적이 있다) 세석평(細石坪)[세상에서 청학동(靑鶴洞)이라고 한다.] 거림동(巨林洞) 수석(水石)을 기록하며 백운동(白雲洞)에서 비로 머물며 당(唐)나라 사람의 운율을 사용하여(남명이 유람하고 완상하던 곳)
금계(錦溪) 선조 재실에서 문(文)오강(吾岡)[존호(存浩)]을 영접하고, 이별하려 할 때에 ‘석별(惜別)’ 2자로 운율을 분간하여 딸을 데리고 간 날 권(權)만송(晩松) 어른이 3소절의 시를 내려 보여주었는데, 문장이 통달하고 뜻이 극진하여 사람들이 감동해서 낭송하게 할 만하므로 운율에 의거하여 받들어 화답함 권(權) 사위 건여(建汝)[순표(淳杓)]가 와서 『소학(小學)』을 강독하는데 하루에 여러 장을 받아 강독함에 아주 부지런하여 그 뜻이 가상하므로, 느릿느릿 두 소절을 얻고 아울러 둘째 아이 종(種)에게 보여주며 최(崔)묵헌(默軒)[상식(尙植)]을 애도하며 이(李)백초(柏樵)[지영(枝永)]을 애도하며 민(閔)경암(耕庵) 장인(丈人)[정식(晶植)]이 ‘태백자극궁(太白紫極宮)’시의 운율을 사용하여 부쳐왔는데 글의 취지가 지극히 정중하여 구구절절 감히 이어 감당하지 못하니 삼가 이에 받들어 감사함 영화정(詠花亭) 화목(花木) 여덟 수에 운율을 이어 이(李) 준천(準千)[영조(英兆)]에게 부침 남(南)여회(汝晦)[상황(相晃)]을 애도하며 유(柳)오산(吾山)[백년(柏秊)]을 애도하며 정(鄭)소재(素齋)를 애도하며 척암(拓庵) 조수경(趙受卿)[한규(澣奎)]과 비천(飛泉) 전순형(田舜衡)과 임헌(任軒) 이대원(李大遠)이 방문하여 암정(巖亭)에서 우연히 지음 이(李)춘전(春田) 회이(晦而)를 애도하며 권(權)일헌(一軒) 자용(子庸)을 애도하며 침 뱉는 그릇[타호(唾壺)]을 노래하며(경인년) 김(金)성가(聖可)[영호(永浩)]를 애도하며 지(池)군(君) 봉길(奉吉)이 모친상에서 너무 애도하여 두 눈을 잃었다가 뒤에 새 의사를 만나 진료하고 치료하여 효험을 보고 시력을 회복하니 지성에 감격하여 곧 바로 ‘천(天)’자 중첩 운율에 이어 지어서 증정함 정(鄭)창숙(昌淑)[필식(弼植)]이 서신 및 감회를 서술한 시 2수를 부치니 운율에 이어 감사함 안(安)이재(怡齋)를 애도하며 60세의 제야[제석(除夕)]에 추(秋)청여(淸汝)[연용(淵蓉)]와 더불어 운율을 집어서 생일 아침 지성에 감격하며(임진년 5월) 권(權)만재(萬齋)를 애도하며 남(南)의관(議官)[상해(相海)]를 애도하며 주(周)형락(亨洛)[우석(禹錫)]을 애도하며 송(宋)덕명(德明)[재봉(在鳳)]을 애도하며 송(宋)덕재(德在)[재엽(在曄)]를 애도하며 구곡령(九曲嶺) 아래서 지(池)여당(如堂) 봉길(奉吉)을 이별하며 갑오년 중추절에 남(南)여명(汝明)[철우(哲祐)]・시언(時彦)[종우(鍾祐)]과 더불어 낙동강 왼쪽을 여행하고 일직(一直) 안곡(安谷) 종중 사람의 집을 지나가며 영양(英陽) 도항동(道項洞) 시조 영의공(英毅公) 제단에 배알하고 추원재(追遠齋)에서 숙박하며 비가 오는 가운데 여러 종중과 시를 지음 여남강당(汝南講堂)[강원 터] 영해(寧海) 축산도(丑山島) 시조 유허비를 배알하고 도산서원(陶山書院)을 배알하고 동경(東京)에서 옛날을 회상하며 김(金)무열(武烈)[주환(冑煥)]을 애도하며 송(宋)근재(勤齋)[헌인(憲仁)]을 애도하며 추강(秋岡) 이(李)효선(孝宣)[상조(相祖)]에게 보답함 성옥(聖玉)・경로(景魯)가 호남(湖南)에서 와 지나가며 여러 벗과 함께 단천정(端川亭)에서 주연을 베풀고 유(柳)군(君) 사진(士振)[재옥(在玉)]이 그윽하게 거처하는[유거(幽居)] 시로써 취지를 보이니 운율에 의거하여 화답함 설(薛)송석(松石)과 함께 지(池)봉길(奉吉)을 방문하고 의령(宜寧) 정동(正洞) 청금정(聽琴亭)에서 서(徐)정부(正夫)[우병(宇炳)]가 야간에 좌정하고 있으니 권(權)현암(弦庵) 자상(子常)[재성(載性)]을 애도하며 제야 전날 지(池)여당(如堂)이 이전 운율을 사용하여 보여주니, 읊음에 어깨가 저절로 솟아 이 때문에 좇아 웃으며 정(鄭)창수(蒼樹)를 애도하며 문(文)오강(吾岡)을 애도하며 중양절(重陽節) 전날 권(權)추연(秋淵)과 함께 계동(桂洞)으로 가다가 비를 만나 지(池)여당(汝堂)의 집에서 이틀 밤을 머물며 조(趙)수경(受卿)을 애도하며 남(南)유천(柳川) 여현(汝賢)[상룡(相龍)]을 애도하며 김(金)학계(鶴溪) 내명(乃命)[동석(東錫)]을 애도하며 나(羅)백언(伯彦)[종후(鍾厚)]이 효도로써 삼가 칭송되므로 많은 선비가 시로써 칭찬하니 좇아 웃으며 추(秋)청여(淸汝)가 대구(大邱) 족보 제작소에서 서신을 부쳐 도착하였고 또 시 한 수를 첨부하였는데 청아한 뜻과 조화하며 은근하니 그 운율에 이어 감사함 곽(郭)중후(仲厚)[진곤(珍坤)]가 ‘한가하게 거처하며 느릿느릿 읊으며’ 한 편을 부쳐 오니 운율에 이어 증정함 신축년 제야에 손자를 안고 기뻐하며 읊음 호연정(浩然亭)에서 현판 위 운율에 이어 함벽루(涵碧樓)에서 현판 위 운율에 이어 운율에 이어 손(孫)명부(明夫)[영석(永錫)]의 완계정(玩溪亭)에 지어 부침 황계폭포(黃溪瀑布) 용파(龍坡) 운율에 이어 나(羅)금재(錦齋) 수여(綬汝)[정균(政均)]을 애도하며 강(姜)자중(子仲)[태주(泰周)]을 애도하며 유(柳)운경(雲卿)[해룡(海龍)]을 애도하며
권4 잡저(雜著) 나라 안 유림(儒林)에게 통고하는 격문(檄文)(경인년) 마음에 관한 논설[심설(心說)] ‘형태[형(形)]가 있은 뒤에 기운[기(氣)]과 질료[질(質)]와 본성[성(性)]이 있다’는 것의 의문에 대한 변론 『중용장구(中庸章句)』 첫 절목을 읽고 「누적 논설[적루설(積累說)]」을 유(柳) 생도[생(生)][해양(海陽)]에게 증여함(◇ 임진년) 고자고(高子恙)가 지름길로도 가지 않고 구멍으로도 나가지 않았다는 논설 정영(程嬰)과 공손저구(公孫杵臼) 논설 ‘오늘 하루를 내일 이틀과 바꾸지 않는다’는 논설을 여러 생도에게 제시함 억지로 인지하고 이해하게 하도록 할 수 없음 예식 논설의 의문에 대한 의견서 『주역(周易)』을 읽으며 생각나는 대로 기록함 서적[서(書)]을 읽으며 생각나는 대로 채록함 금산(錦山) 기행(紀行) 두류산(頭流山) 유람을 기록함
권7 발문 선조 추계(秋溪) 선생 사실 기록[『추계선생실기(秋溪先生實紀)』] 발문 회산(晦山) 문공(文公) 문집 발문 『산재유고(山齋遺稿)』 발문 『봉곡유집(鳳谷遺集)』 발문 『선세분금록(先世分襟錄)』 후기 『무릉세고(武陵世稿)』 발문 『경재유고(敬齋遺稿)』 발문 『눌수문집(訥叟文集)』 발문 『삼지집(三芝集)』 발문 『몽계유고(蒙溪遺稿)』 발문 『지씨(池氏) 모친 권(權) 유인(孺人) 행적』 후기 『의와유고(毅窩遺稿)』 발문 『무호(無號) 박공(朴公) 사실 기록』 후기 『노초(老樵) 이공(李公) 사업 행적』 후기 『만오유고(晩悟遺稿)』 발문 『우천시고(愚泉詩稿)』 발문 『덕초유고(德樵遺稿)』 발문 『혼서비례(昏書備例)』 후기 주성삼(周成三) 『동유잡영(東遊雜詠)』 후기 『나씨세보(羅氏世譜)』 후기 『유(柳)원경(元卿)[상환(相煥)] 행적 기록』 후기 『이효녀전(李孝女傳)』 후기
명문(銘文) 등잔 명문 거울 명문 칼 명문 화로 명문 지팡이 명문
남계재(南溪齋) 명문 망극당(罔極堂) 명문 사령당(四靈堂) 명문 학가대(學稼臺) 명문 일신재(日新齋) 명문 자남정(紫南亭) 명문 우고실(友古室) 명문 정담헌(正澹軒) 명문 상지헌(常止軒) 명문 후천서실(後川書室) 명문 우재(愚齋) 명문 모헌(慕軒) 명문